넷플릭스 정리하고 책 읽기 루틴 만들기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이어 습관적으로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습관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물론 종종 넷플릭스를 다시 켜기도 했다. 좋은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의미 있는 콘텐츠다. 하지만 이전처럼 습관적 소비가 아니라, 의도적 선택이 되었다. 콘텐츠의 질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상태로 그것을 소비하느냐다. 책 읽기 루틴을 만들고 나서 나는 더 단단한 리듬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콘텐츠의 양보다 삶의 흐름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다.
잠깐의 쉼이 하루를 삼켰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순간 습관처럼 넷플릭스를 켰다. “하나만 보고 잘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알고리즘은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끝나자마자 다음 화가 자동 재생되고 그걸 끄기엔 너무 아쉬웠다. 어느새 두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고 잠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런 날이 반복됐다. 심지어 가끔은 보기 싫은데도 습관적으로 틀어두기까지 했다. 뭔가 봐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 혹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쉬는 시간이 필요해서 넷플릭스를 켰다. 하지만 나중엔 그게 쉼이 아니라 피로를 연장시키는 무의미한 루틴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문제였던 건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틈이 자꾸 영상 시청에 잠식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넷플릭스를 잠시 멈추고 그 시간에 책 읽기 루틴을 만들어보기로. 단지 콘텐츠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간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었다.
넷플릭스를 줄이고, 루틴을 설계하다
처음엔 강제로 넷플릭스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억지로 끊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신 접근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첫 번째로 한 일은 넷플릭스 앱을 휴대폰에서 삭제하는 것이었다. 대신 TV나 노트북으로만 보게 했다. 이 간단한 변경만으로도 접근성이 떨어졌고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었다. 바로 누워서 보던 습관이 사라지면서 시청 자체가 줄어들었다. 다음은 무계획 시청 금지원칙이었다. 어떤 콘텐츠를 볼 건지 미리 정하지 않으면 넷플릭스를 열지 않기로 했다. 콘텐츠 탐색만 하다가 한참을 보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영화나 시리즈는 따로 메모장에 적어두고 보고 나면 다시 앱을 종료했다. ‘틀기 쉬운 환경’을 ‘틀기 어려운 환경’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책 읽기 루틴을 만들어갔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하루 10분만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시간은 매일 밤 10시로 정했고 읽는 장소는 거실 소파였다. 잠들기 직전까지 화면을 보는 습관을 줄이기 위해 침대에선 폰 대신 종이책을 들기로 했다. 책은 에세이, 짧은 소설, 자기계발서처럼 부담 없는 장르부터 골랐다. 처음엔 집중이 잘 되지 않았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책을 덮는 순간이 넷플릭스를 끄는 순간보다 훨씬 만족스러워졌다.
콘텐츠가 아니라 리듬을 바꿨다
넷플릭스를 정리하고 책 읽기를 루틴화한 이후 내 생활 리듬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잠드는 시간의 안정화였다. 영상 대신 책을 보고 자니 뇌가 차분해졌고 수면의 질도 높아졌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덜 힘들었고 하루가 가뿐하게 시작되었다. 밤에 영상 콘텐츠를 보는 건 단순한 시청이 아니라 뇌에 과도한 자극을 주는 일이었다는 걸 체감했다. 또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바뀌었다. 영상은 빠르게 지나가고 집중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재생되지만, 책은 한 줄 한 줄 읽고 내 속도로 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넷플릭스를 줄인 덕분에 시간이 생겼고 그 시간 안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내 방식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가끔 넷플릭스를 다시 켜기도 했다. 좋은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의미 있는 콘텐츠다. 하지만 이전처럼 ‘습관적 소비’가 아니라, 의도적 선택이 되었다. 콘텐츠의 질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상태로 그것을 소비하느냐다. 책 읽기 루틴을 만들고 나서, 나는 더 단단한 리듬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콘텐츠의 양보다, 삶의 흐름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다.